사키에서 좋아하는 요소들 by 흔한이름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제가 사키에 빠진 이유 같은 것입니다. 2009년에 사키 1기 애니메이션 볼때도 흔한 애니메이션A였었고, 사키에 빠진 직후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미소녀만 잔뜩 나오는 이딴 3류 작품, 내가 왜 마작 같은 X도 인지도 없고 XX같은거 다루는 작품에 빠진거지' 현자타임 자주 오곤 했었는데, 그때의 저를 위한 글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캐릭터 작품으로서의 사키

단언하고 싶은데, 코바야시 리츠는 진짜 (제 취향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대가입니다. 캐릭터 외형의 디자인도 그러하며, 또한 캐릭터 마다 담겨있는 성격이나 이야기에 섬세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워낙 캐릭터들이 많기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사키라는 작품이 무엇보다도 어떤 관계들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일차적으로 주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관계들이 캐릭터들을 단순히 귀여운 데 지나지 않고 어떤 애뜻함을 둘러내도록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독특하고 매니악한 구석들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리츠의 힘을 느낍니다. 사키에는 평범함을 가장해서 여러 의미로 온갖 괴상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죠. 사키를 그 리츠 자신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풀어내는 장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2차 창작 등에서 온갖 재료가 난립하고 있는 사키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이어지는 내용인데, 리츠가 자신의 캐릭터들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도 큰 것 같습니다. 사키 캐릭터가 살아 있거나 사키 세계를 관찰하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리츠 안에는 사키 캐릭터와 사키 세계에 대한 확고한 무언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은연 중에 사키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사키도 은근히 캐릭터들에 관한 떡밥이 많은 작품입니다. 그런 떡밥들은 그렇게 우리가 리츠를 거쳐서 사키 세계를 보기에 생기는 한계 비슷한게 아닐까로 이해하게 되네요.

이 리츠에 의해 창조된 사키 캐릭터에 관한 세계관은 정말 방대합니다. (2차 창작의 이야기가 아님) 정말 원작 한 번 정주행 했다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스핀오프 포함해 이 2~30권 남짓한 작품 안에서 온갖 고찰로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발굴되고 발굴되는 걸 지켜보던 과거, 경이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키의 느린 연재 속도가 오로지 단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캐릭터 외형 또한 너무나 제 취향인게 많습니다. 이건 제가 리츠의 그림체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은데, 그게 물론 단순히 그렇게 리츠 그림에 고무되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처음에 사키에 빠지는 계기가 돼주었던 것이 아와이와 케이였기도 하고.



■멘탈 스포츠 작품으로서의 사키

사키는 스포츠 만화이면서, 마작이라는 멘탈 스포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하고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부분입니다. 사키가 스포츠 만화로서 노력과 갈등, 승리 같은 부분의 이야기는 다소 약한 반면, 저 부분에서 새로운 매력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와 다소 겹치는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두 부분을 보고 있습니다. ①초식초식한 캐릭터들이 무쌍한다. ②멘탈이 아작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사키는 평범한 문학소녀인 주인공 사키라든지부터 해서 별로 안 그럴 거 같은, 혹은 정말 그럴 거 같은 다양한 캐릭터들이 작탁 위에서 강하고 무서운 매력을 보여주곤 합니다. 사키의 마작을 하지 않는 듯한 연출들은 이미 유명하죠.

그리고 실제로 사키에는 평범한 마작을 넘어선 초능력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마작이라는 운적 요소가 강한 게임의 특징이자 매력을 만화적으로 과장하고 극대화해서 보여주게 됩니다. 이런 초능력들이 그저 유치한 재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작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도 꽤 진지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이 작품도 이른바 이능력 배틀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능력 배틀의 매력도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캐릭터들 간 수싸움과 이능력 자체의 멋입니다. 사키는 그 어느 쪽도 만족스럽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반면, 사키 인기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축이라 생각하는 부분인데, 사키는 정신적으로 몰리게 되는 캐릭터들 묘사에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마작 해봤다면 알겠지만, 뭘 남겨야 할지, 뭘 버려야 할지, 정말로 선택 하나하나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선택과 압박에 의한 두려움이나 떨림은 비단 마작에서뿐만은 아니겠지요. 그 공포 속에서 정말로 무너지는 캐릭터도 있고, 역경을 딛고 한 발 올라서는 캐릭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응원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건, 그 안에서 본인의 모습이 얼핏 보였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사키를 그냥 스포츠 만화로서 볼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나 고등학교 응원하면서 감상하는 것이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사키 캐릭터 전원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패퇴하는 고등학교 생길 때마다 안타깝네요.



■코바야시 리츠 작품으로서의 사키

굳이 숨기지 않겠습니다. 사키를 좋아해서 리츠를 좋아하게 된 건지, 리츠를 좋아해서 사키를 좋아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저는 이 작가를 미친 듯이 좋아합니다. 사키를 만들어냈다는 이유로 저는 리츠의 취향을 제 취향과 동일시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키의 모든 요소요소들에 그런 리츠의 손길이 닿았다고 생각하면 전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는 조금 말장난 같은데,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는 리츠의 매력은 사키를 만들어냈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는 조금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잘 밝혀지지도 않은 실존 인물에 대해 너무 뇌내 망상 펼치는 것 같기도 해서 생략하겠습니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오래전 씰 온라인의 랭커였고, 전작 <FATALIZER>에는 한국 이름의 주연급 캐릭터가 나왔다는 점에서 한국인으로서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나 정도일까요.

한편으로는 이 신비주의 작가가 그 자체로 재료가 되고, 심지어 주인공인 작품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리츠의 그림체를 정말 좋아합니다. 제게 이 그림체 자체가 사키의 매력은 아니었는데, 어느샌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리츠의 그림은 굉장히 노골적이고 문란한 구도 많이 그리고 있는데도, 전혀 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렇지만 커뮤니티에서 아직까지 이런 말이 나온 건 본 적이 없기에, 어쩌면 이건 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이지만, 최근에는 리츠의 사키(주인공)에게 새롭게 빠지면서 뇌가 녹을 뻔 했습니다.

사키 입덕하고 초창기에 굉장히 놀랐던 부분 중 하나는 사키의 배경 미술이 퀄리티가 높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리츠가 자료 사진은 찍어도 배경 미술 담당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 부분에서 저는 이 작가가 이 작품을 정말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한 동시에 그 약간 외지고 향토스러운 풍경들을 거니는 캐릭터들에게서 서정적인 감상을 받습니다. 사키의 성지순례부가 활성화되어 있는 부분은 이 점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2차 창작 작품으로서의 사키

제가 사키에 빠졌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코어한 팬들이 많다는 부분일 것입니다. 사키라는 작품 자체가 파고들 요소가 정말 많아서 신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생각보다 그 규모도 꽤 있었습니다. 진입장벽도 있고 약간 고인물이긴 해도 그런 사키에 미쳐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키에 대한 진지한 고찰들이 이뤄지기도 하고, 사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퀄리티 있는 2차 창작들이 또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키에 입덕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도 사키SS와 사키 스레의 개드립들을 읽으면서부터였습니다.




사키 때문에 마작과 일본어를 배웠습니다. 제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덧글

  • 카야jack 2017/08/20 17:33 # 답글

    작품에 케릭터가 많이 나오면 작품이 난잡해지기 쉬운데 사키는 케릭터가 많이 나오는 데도 불과하고 조화로우면서도 개성미가 넘치는게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렇게 개성미가 뚜렷한작품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단생각도 드는군요
  • 흔한이름 2017/08/20 23:25 #

    캐릭터 하나하나에 억지로 뭐 하나라도 개성을 우겨넣고, 또 그 팬들은 한 줄 설정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으니
    그리고 그런 어거지에 빠져선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네요
    진짜 소꿉놀이 하기 좋은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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